누구든지 원하면 돈 빌릴 수 있는 나라
경제신문이나 투자관련 뉴스를 듣다보면 ‘유동성’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유동성이 풍부할 경우, 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부(富) 효과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호재로 받아들인다. 그러면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말의 이면에는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까? 유동성(통화량)은 신용에 의해 창출되고, 창출되어진 신용에 의해 또다시 돌고 돌며 확대되어진다. 신용이란 쉽게 말해서 ‘빚’을 뜻한다. 그러므로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것은, 빚을 내어 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적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 우리나라 사정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풍부한 유동성으로 부동산가격이 상승했지만 부동산 담보대출 등 개인대출금도 사상 최대로 증가해 심각한 국가문제가 되었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이처럼 유동성은 빚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최근 금융회사들이 다시 서민대출이나 고금리 대출에 혈안이 되어 있다. 무보증·무담보는 기본이고, 누구에게든 쉽게 돈을 빌려준다. 우리 생활 속에 대출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은행권도 서민대출을 늘리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니, 과히 돈의 천국이 아닐 수 없다. 금융위기 전에는 담보능력이 있는 개인이 유동성에 일조했다면, 요즘 대출시장은 담보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서민을 대상으로 빚을 권유하고 있다.정작 이러한 행위를 규제해야 할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은 고작 금리를 낮추라고 권유하거나 신용이 낮은 사람에게 정부보증으로 빚을 내어 주는 정도다. 이는 빚으로 빚을 갚으라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기업의 이익이나 개인의 투자수익률은 장기적으로 경제성장률에 수렴하기 때문에, 저성장 국면이 지속된다면 서민들이 대출금을 상환하고 부를 형성하는 경우는 극히 힘들다고 봐야한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어떠했을까? 기근이 들어 백성의 삶이 곤궁해지면 나랏님은 가장 먼저 민초들의 빚을 탕감시켜 주었고 고리대로 억울하게 재산을 탈취당하거나 노비로 전락한 백성의 신분을 복원시키는 애민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빚으로 빚을 갚고 있으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부가 서민 대출을 이용해 유동성을 유지하고 부동산 가격을 떠받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서민을 위한 금융정책은 대출보다는 빚을 줄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고, 후세대에게 우리가 좀 더 떳떳해 질수 있지 않을까?
(사)광주경제문화공동체 대표이사 윤 영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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