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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함칼럼) 토지개발이익은 누구의 것인가?
작성자 더함 이메일 전송 조회 279 작성일 2022/08/05 11:19
링크주소1 http://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62931

최근 대장동 토지개발이익을 두고 여·야 국회의원은 서로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느라 연일 공세를 펼치고 있다. 토건세력과 일부 정치인이 야합하여 천문학적인 토지개발이익을 수취한 사례가 어디 대장동 한 곳뿐일까? 아마도 토지개발이 추진되는 거의 모든 사업대상지가 대장동과 같을진데, 정치인은 마치 대장동이 특수한 사례인 것처럼 말한다. 개발이익의 환수를 원하는 국민의 바람만 놓고 보면 지금이 토지개발이익 환수제도를 강화시킬 절호의 기회인데, 여·야 국회의원은 대장동의 몸통이 누구인지만 따지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토지개발이익은 누구의 것인가? 이 문제를 답하기 위해서는 소유와 노동의 관계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토지개발이익은 노동이 아니라 토지의 선점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근대사회에서 노동과 소유를 일치시키는 것은 마치 사회정의처럼 간주되고 있다.


예를 들어 토지에 노동을 첨가한 농부가 노동 수확물을 소유하는 것은 ‘노동의 대가=소유’가 되어 일견 정당하게 보인다. 그러나 노동은 소유의 권원(權原)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몸에서 생성된 난자와 정자가 있다고 하자. 이것이 내 몸에서 생성되었다고 해서 내 맘대로 타인에게 판매한다면, 이는 법률에 저촉된다. 즉 누군가가 자신의 노동 생산물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으려면, 노동 생산물과 소유 사이에는 사회적 맥락이 필요하다. 하물며 노동 생산물은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노동은 기실 토지의 선점을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농부가 자신의 수확물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노동 이전에 토지의 선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농부는 토지를 선점한 후 자신의 노동을 통해 노동 수확물을 소유할 수 있다. 그런데 노동 수확물에 대한 농부의 소유가 정당하려면 먼저 토지의 선점이 정당해야 한다. 만약 농부가 토지를 정당하게 선점하지 않았을 경우 노동 수확물의 수취도 정당성을 잃게 된다.

토지는 신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자연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은 신이 주신 토지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수익할 수 있다. 이는 어느 누구도 공유물인 토지를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부가 토지를 정당하게 선점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바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허락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근대사회의 자유주의자들은 사회계약을 통해 농부가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토지의 소유권을 인정받았다고 간주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가상일뿐이다. 근대사회에서 토지의 선점은 인클로저 운동처럼 공유지의 농민을 강제로 내쫓고 공유지를 사유화한 것에 불과하다.

오늘날 토지개발도 토지의 선점과 동일하다. 정부는 공익을 내세워 공유지나 개인의 토지를 수용하고 개발에 착수한다. 이러한 행위가 공익을 위한 정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개발사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가 책임지고 공익적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공익적 가치와 법을 앞세워 토지를 수용한 후 개발업자에게 개발권을 넘긴다. 개발업자는 손 안 대고 합법적으로 토지를 선점하고, 토지의 용도만 변경했을 뿐인데 건폐율, 용적률이 달라져서 막대한 토지개발이익을 수취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벌어들인 소득이 토지를 개량하고 주택을 건설한 노력의 대가라고 주장한다. 즉 개발업자는 자신이 수취한 엄청남 이윤의 근거로 노동을 제시한다. 주지하다시피 노동은 소유의 권원이 아니라 토지의 선점을 정당화하는 변명에 불과하다.

토지는 신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로서 누구도 자신의 것이라 주장할 수 없는 공유물이다. 개발업자의 노동 대가는 토지를 개량하고 주택을 건설하는 비용에 국한될 뿐 토지개량으로 발생하는 유·무형의 이득은 당연히 국민에게 귀속되어야 한다. 농부가 농사를 짓고 가져가는 것은 토지 수확물에 불과할 뿐 자신이 선점한 토지는 그대로 남겨두어야 사회정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토지개발이익은 누구의 것인가? 아마도 정답을 모르는 국민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다만 토건세력과 일부 권력집단이 본질을 흐리고 있을 뿐, 국민은 대장동 개발이익에 대한 정부와 여·야 의원의 행동을 낱낱이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이를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다. 국민의 바람이 물거품 되지 않도록 정치인 모두 힘을 합쳐서 개발이익 환수제를 반드시 강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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